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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마음 산책 떠나볼래? <현대차 시리즈 2016 : 김수자 - 마음의 기하학>

 




‘Time Poor’ 라고 들어보셨나요? 

말 그대로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 숨 가쁘게 하루하루를 달리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이자 여유의 빈곤을 대변하는 말입니다. 오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는데, 벌써 12월이 다가와서, 한 해의 막바지라는 사실을 지각할 때면 아쉽고도 허망하다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럴수록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한 법. 바쁘다는 핑계는 오늘만큼은 접어두고 스스로를 반추할 수 있는 ‘마음챔김’ 을 저와 함께 시작해보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오롯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제가 찾은 곳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MMCA) 이었는데요. 저는 평소에도 일상 속에서 타임 푸어를 탈피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미술관  산책을 자주 다니고 있습니다. 마침 저희에게 딱 맞는 전시가 이곳에서 열리고 있어 한걸음에 달려왔는데요. 

바로 <현대차 시리즈 2016 : 김수자 - 마음의 기하학>입니다.



<출처 : http://brand.hyundai.com/ko/art/partnerships/mmca-hyundai-motor-series-2016-kimsooja.do>



김수자 미술가는 보따리 전문가, 바늘의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자랑스러운 한국의 미술가인데요. 바늘을 꿰매는 행위로부터 얻은 영감을 토대로, 천을 이용해 일상의 오브제들을 감싸는 입체 작업으로 명성을 얻은 작가이기도 합니다. 평면 작업의 오브제 설치미술부터 퍼포먼스, 실의 궤적과 같은 비디오 작품 순으로 꾸준히 작품 세계를 넓혀나가며 평면과 입체, 공간과 시간, 삶과 예술, 자아를 통찰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마음의 기하학 Archive of Mind



시작 입구부터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어두컴컴한 가운데 홀로 빛을 받는 거대한 원형탁자 위에, 잔뜩 쌓인 각양각색의 동그란 찰흙들이 저희를 맞이합니다. 빽빽한 황토색과 회갈빛의 찰흙 공들은 관객들이 직접 빚은 작품들인데요. 





흩뿌려진 완성된 공들과 그 뒤의 암흑의 배경이 꼭 우주에 온 것만 같습니다. 저도 의자에 앉아 점토를 만지작거리며 공을 만들어 보았는데요. 오롯이 공을 동그랗게 만드는 데 집중을 하다보면 우리를 괴롭혔던 시간은 가늠조차 안 되고, 내 마음의 모서리도 깎이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느낄 수 없었던 마음 속 변화를 아주 천천히 그리고 세밀히 들여다본 것만 같았습니다.





좀 전의 설치미술이 마음을 추상적으로 표현했다면, 이번 오브제들은 몸의 과정을 활용하여 좀 더 직설적으로 대상을 표출하는데요. 작가가 오랫동안 사용한 요가 매트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바느질을 통해 들숨과 날숨의 파동을 재현하는가 하면, 작가 자신의 팔을 본뜬 조각을 통해 피상적인 사물의 형태를 드러냈습니다. 



연역적 오브제 Deductive Object



오브제들을 보면서, 나의 삶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상적 물체들을 관찰하거나 내 몸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심 있게 탐구한 적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요. 결국은 마음의 문제임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삶의 여유를 찾고 발견의 가치를 즐기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챔김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연역적 오브제 Deductive Object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야외 전시 마당으로 나가봤는데요. 우주의 알이라 불리는 인도 브라만다의 검은 돌을 모티브로 하여 제작된 조각이라는데, 꼭 그 위에 오방색 보따리를 싸맨 모양새 같았습니다. 아까 빚은 찰흙 공이 세상 밖에서 여실히 단단해진 모습 같기도 하죠? 하단에 설치한 거울평면의 경계선에 서 보면,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통해 좀 더 객관적으로 자신과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호흡 To breathe



사실 이 작품을 보면서 ‘정말 신선하고 감각적이다’ 라고 생각했는데요. 그 이유는 보따리의 본질을 정말 아름답게 포장한 ‘호흡 To breathe’ 이라는 작품의 영향이 컸습니다. 전시장 유리창에 특수필름을 붙여 빛의 경계가 끊임없이 변하는 퍼포먼스인데요. 바느질을 추상적으로 진화시키고, 한 번 더 야외의 조각을 싸매는 것으로 확장되는 작가의 대담한 예술세계에 놀랐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 덕분에 오후와 저녁의 광경도 다르고, 그 사이에 제 마음도 그때그때 변하는 게 느껴지는 것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여정이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에 한층 기분이 좋았습니다.



실의 궤적 - 챕터V Thread Route - Chapter V



가장 기대했던 영상 작품만이 남았는데요. 바로 ‘실의 궤적 챕터 V’입니다. 사실 2010년부터 김수자 작가는 전 세계를 무대로 직물 문화를 바탕으로 한 영상을 제작해왔고 이번 전시에서 새로운 챕터를 공개했기 때문에 한 차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올해 공간디자인 교양 수업 때 우연히 접한 작가의 ‘바늘 여인’에서 영향을 받고, 김수자 미술가에 대해 알아보던 중에 알게 된 프로젝트인데, 매혹적인 영상미 때문에 개인적으로 더욱 고대했습니다. 

역시는 역시죠! 시각적 아름다움과 절묘한 변주로 점철된 다큐멘터리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점점 머릿속이 비워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실에서 성장한 작가의 직조문화에 대한 애정도 느낄 수 있었지만, 내러티브 없이 담담하게 서술하는 자연과 건축, 농업, 인류에 대한 사랑에 대한 성찰이 영상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살펴본 후에는 타인의 마음을 살피는 것도 어떻겠냐고 묻는 것 같기도 하구요.





저와 함께 살펴본 전시는 즐거우셨나요? 조금 무거운 현대미술 주제였기도 했지만, 누구나 한번쯤 혼자서 생각해보고, 충분히 느껴봤던 감정들이라서 그렇게 어렵지만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저와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오롯이 자신만의 마음의 소리니까요. 

이번 주말에는 잠깐이나마 바쁜 일상에 지쳐있던 자신에게 잠시 시간을 내주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내면의 에너지에 귀 기울이고, 올해 당신에게 수고했다는 보상과 위로의 말을 선물해보세요.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분명 다른 한 해를 맞이할 테니까요.



2016년 7월 27일~ 2017년 2월 5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제 5전시실 및 전시마당 

                                                             (사진 : 본인 촬영)